아몬드

“아몬드를 먹으면 두뇌가 발달합니다.” 한 건강 프로그램에서 안경을 끼고 의사 가운을 입은 박사가 얘기한다. 우리 할머니도 윤재의 엄마도 이 프로그램을 보시곤, 우리 둘에게 아몬드를 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더 영리해지라고 먹게 되었고, 윤재는 제발 감정을 좀 느끼게 해달라고 빌며 먹게 되었다. 윤재는 감정을 못 느꼈다. 이걸 보고 처음 떠오른 것은 드라마 <비밀의 숲>의 황시목 검사였다. 상대방의 말에 반응을 해주기 어려웠던 황시목 검사로 큰 충격을 받은 나는 이런 주제에 대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윤재가 감정을 못 느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윤재의 감정이 잠시 마치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그의 마음 속의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지금부터 그가 느끼게 된 하나하나의 감정과 그 소중함을 마음속으로 부드럽게 느껴보자.
처음 윤재가 느끼게 된 감정은 외로움이다. 그는 사랑하는 엄마와 할멈을 잃었다. 물론 그가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생각하기는 힘들었으므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빈 책방을 보면서 그들을 생각했고 그리워했다. 그들이 없으니 외롭다고 느낀 것이다. 이런 윤재를 보면서 나는 우리들도 윤재처럼 사랑하는 것들을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가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좋아하는 친구와 헤어졌다. 나도 윤재처럼 슬펐고, 함께하던 시절이 떠올랐지만, 그것을 잊으려고 아무렇지 않다는 척 다른 일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너무 외롭고 그 친구가 보고 싶다. 이렇게 마음속의 공허함과 외로움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할수록 날 더 아프게 찌르고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다. 하지만 나는 외로움이라는 어두운 감정이 날 더 부드럽게 한다고 느꼈다. 마음이 감정을 많이 느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 후, 난 사람들의 기쁨, 아픔, 슬픔을 더 잘 공감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게 된 윤재의 마음이 조금은 부드러워지지 않았을까.
마음이 성장한 윤재는 이제 점점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한다. 곤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이코패스 또는 비행청소년이지만, 마음 깊은 곳은 아주 여리다. 윤재는 곤이를 보면서 자신과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곤이는 그를 더 알고 싶어 한다. 둘은 아주 서툴지만, 서로 마음이 가까워지고 친해지기 시작한다. 도라와 윤재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고민들과 속얘기를 털어 놓으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결국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 윤재는 도라가 올 때마다 자꾸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뛰어서 힘들다고 했다. 심박사가 말했듯이 나도 그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 어색해서 그런 행동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우정은 사람과는 절대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감정들이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사랑이나 우정을 뭘 아냐고 하지만, 나나 이 책의 청소년들을 포함한 많은 아이들은 그게 누구든 한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한 적이 있다. 즉,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조건은 없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사랑과 우정이 어떤 것인지 더 깨달았다. 사랑과 우정이란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윤재는 도라와 곤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도라에게 “달리려는 목적이 뭔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부모님들처럼 성적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닌 그저 본래 목적이 뭔지 궁금해 말한 것이었다. 즉, 달리기를 잘하지만 직업으로 삼기는 힘든 도라가 아니라 달리기를 좋아하는 도라로 생각한 것이다. 또, 소년원에 갔다 온 무서운 곤이가 아니라 친한 친구 곤이라고 생각했다. 사랑과 우정이란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둘을 생각하는 윤재야 말로 사랑과 우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을 촉촉하게 할 마지막 관문은 희생이다. 윤재는 가출을 하고 철사 무리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는 곤이를 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잔인한 철사는 그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한다 하면서 곤이를 칼로 찌르려고 한다. 윤재는 그 사이로 뛰어들고 크게 다친다. 감정이 없다는 사람은 이런 행동을 절대 할 수 없다. 그의 말라 있던 감정의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건 바로 이 때라고 본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윤재의 희생이 슬프면서 윤재의 감정이 살아나서 너무 놀라웠고 감사했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다. 곤이가 다친 윤재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생각했다. “곤이도 감정이 메말라 있었는데 윤재가 그것을 풀어준 것이 아닐까?” 곤이는 항상 윤재를 때리고 사고를 치는 아이였는데, 윤재 때문에 운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깊게 울렸다. 희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해서 하는 행동이고 내가 손해 볼 수도 있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야 말로 감정이 메마른 현대라는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다.
윤재가 닿게 된 오아시스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내 마음을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오아시스로 가기 위해 여러 감정들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감정이 메말라 있는 사람일 뿐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감정이 메마르고 서로를 겨누는 이기적인 사막에 살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윤재와 곤이처럼 오아시스같이 나와 상대방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감정이 풍부한 사회가 되도록 나부터 노력해야겠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을 나부터 해내면 사회는 천천히, 하지만 계속 따뜻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