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vs. 위안부상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는 아래 그림과 같은 상이 세워져 있다. 이 동상은 일본에 끌려가셨던 할머니들이 1,000번째 수요 집회 때 세우신 동상이다. 이 동상은 김서경운성 부부의 공동작업 작품이다. 오른쪽에는 의자에 앉아 단발머리와 한복 차림을 하고 있는 소녀, 그리고 왼편에는 소녀가 앉아 있는 의자와 같은 사이즈의 의자가 있다. 빈 의자는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니들의 빈자리이다. 또한 빈의자 옆에는 표지석이 있는데 여기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분인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쓰신 평화비 문구와 소녀상이 왜 세워졌는지에 대한 글이 적혀 있다. ‘1992년부터 이 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의 천 번째를 맞이하여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운다’라 적혀 있다. 그리고 소녀상 밑쪽에는 그림자 모양의 어두운 색 돌로 할머니의 옆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 현재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위안부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에서는 이 상을 ‘평화의 소녀상’ 혹은 줄여서 ‘소녀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굳이 ‘위안부상’이라는 명칭을 고집하고 있다. 이처럼 한일 간에는 이 상이 ‘소녀상’이냐 ‘위안부상’이냐를 두고 ‘명칭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소녀상’이든 ‘위안부상’이든 어차피 같은 동상을 지시하고 있으므로 어느 쪽으로 부르든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단어에 담겨 있는 의미가 다르다.
소녀상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일본 군대에 성노예로 강제 징용된 조선 소녀를 의미한다. 굳이 소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일본이 조선의 어린 소녀를 강제 징용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평화의 여성상’이 아니라 굳이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평화의 소녀상’이 어리고 순수한 소녀를 징용했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안부상은 조선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상을 고집하는 것은 책임을 조선 소녀들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이다. 일본은 조선 소녀가 직접 지원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소녀상도, 위안부상도 아닌 ‘일본의 성노예제 피해 소녀상’같은 강제 징용을 강조하는 명칭이 적절한 것 같다. 소녀상이라는 명칭은 성노예로 피해받은 소녀를 강조하지 못한다. 위안부상이라는 명칭 역시 조선 소녀가 직접 위안부에 자원했다는 사실이 아닌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이 조선 소녀들을 강제 징용한 사실이 잘 드러나는 일본의 성노예제 피해 소녀상이라는 명칭이 적절하다.
최근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결정하면서 또 다른 명칭 전쟁이 일어났다. 일본이 방류하고 있는 물을 국가마다 달리 부르는 이유는 각 나라마다 적용하는 의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 처리수’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과학적으로 처리된 오염수는 안전하다는 의의를 강조한다. 반면, 중국, 러시아 등 다른 국가는 ‘오염수’, ‘방사성 물’ 등으로 부른다.
나는 현재 방류되고 있는 물을 ‘처리된 오염수’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본의 주장대로 과학적으로 처리되었지만, 다른 나라의 주장처럼 여전히 오염수이기 때문이다.
명칭 전쟁은 명칭이 이념과 이해 관계를 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명칭은 단순히 이름이 아니라 특정한 이념을 옹호하거나 누군가의 이익을 옹호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위안부상이나 처리수라는 명칭은 일본의 이익을 옹호한다. 일본은 책임을 전가하고 오염수의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명칭을 사용했다. 그러나, 자신의 나라가 이익이 되는 쪽으로 명칭을 변형시키거나, 사실과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국가의 이익이 이름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명칭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하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서로 오해가 생겨서 공동체 안에서 혼란이 생기고 신뢰가 깨진다. 예를 들어, 오염수 명칭 논란 때문에 한국 사회는 오염수냐 깨끗한 처리수냐를 가지고 오해와 혼란이 생긴다. 결국 서로 언쟁을 벌이면서 한국 시민들간에 신뢰가 깨진다. 또한, 진실을 반영한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일본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진실을 반영한 명칭을 사용하면 우리나라와의 신뢰를 지키고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