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

아돌프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 실무 총 책임자로서 유대인 500만 명의 학살에 앞장섰다. 그는 1946년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하고, 1950년에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15년 동안 숨어 살다가 1960년 5월에 모사드한테 납치됐다.
아이히만이 반인류적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자신의 행동의 책임을 상관들에게 전가했기 때문이다. 한 실험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행동을 타인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사람을 죽이는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이 실험에서 선생님 역할을 맡은 사람들 중 65%는 감독관이 결과에 책임을 진다고 말하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준의 전기 충격을 가하였다. 아이히만 역시 재판장에서 상관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둘째, 아이히만은 비판적인 사고가 부족했다. 한나 아렌트는 <이스라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악의 평범성이란 비판적 사고력을 상실하면, 평범한 사람도 심각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남의 의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그 결과 아이히만처럼 죄책감 없이 악마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
아이히만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윤리적 책임 의식을 갖고, 비판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윤리적 책임 의식이란 법적으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마음가짐이다. 윤리적 책임 의식을 키우려면 자기가 한 일의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비판적인 사고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의심을 가지고 당연히 여기지 않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를 하려면 극단적인 사고에 매몰되지 않고, 대립하는 의견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뒤, 논리적으로 검토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서경식은 ‘평범한 사람들의 폭력성’에서 윤리적 책임 의식과 비판적 사고 능력이 부족한 평범한 사람들이 마이너리티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일본 국립 대학의 학생들은 유대인과 불법적으로 교우관계를 유지하겠나는 질문에 끊겠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교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이나 유대인에게 득이 되지 않으므로 옳다고 주장했다.
이 학생들은 독일 나치당을 비판적으로 보지 않고, 상황에 굴복했다. 이 학생들은 철저한 개인주의와 경쟁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보여준다. 먼저, 학생들은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다. 사회가 유대인들과 친구가 되면 안 된다고 규정을 했으니 그것이 옳겠구나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사회가 옳다고 말하는 규범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윤리적 책임 의식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에 대한 신의와 우정을 버리는 부당한 행동을 했다. 학생들은 법에 맞서지 않는 것이 학교와 직장 생활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교우 관계를 끊은 것도 모자라 그것을 옳은 일이라고 정당화한다. 하지만 교우관계를 끊는 것은 친구에게 상처를 남길 것이고, 학생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폭력성’을 읽고 나니 교우관계를 끊겠다는 입장들 때문에 고려할 점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경식은 쉽게 교우관계를 유지한다고 대답하는 것은 실제로 그 당시 유대인들을 돕던 사람들의 노력을 하찮게 보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의 글에 사람들은 나 같은 무력한 존재가 어떻게 권력에 맞서겠냐고 변명하면서 끊는다는 입장도 이해가 된다. 잘못된 사회에 맞서는 두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몇 주 전, 학교 체육 시간에 우리 반은 준비 체조를 하고 있었다. 시범을 보여주는 학생이 중간에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우리 반은 이의 없이 그 동작을 따라했다. 시범을 보여주는 학생은 그 때까지 한 번의 실수도 없었어서, 그 학생의 동작이 우리는 당연히 맞다고 생각했다. 비록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아이히만처럼 될 수 있겠구나.’ 우리 반은 ‘권위자’의 행동을 당연히 여겼다. 우리는 모두 아이히만을 비판하지만, 정작 우리들은 아이히만처럼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
아이히만은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한테 우리의 행동을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즉, 윤리적 책임 의식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비판적인 사고를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