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악인입니까?

악의 평범성이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개념이다. 악의 평범성은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들이 홀로코스트와 같은 거대한 악을 저지르게 된다는 개념이다. 악의 평범성의 예로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때 5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의 총책임자였다. 그는 500만 명을 아무 죄책감 없이 학살해버리고, 재판에서도 행정업무를 처리했을 뿐 직접 죽이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는 본인의 자식에게도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이히만에게서 드러나는 악의 평범성은 자기합리화를 통해서 만들어졌다. 그는 상급자들이 유대인들의 학살을 무덤덤하게 대하는 걸 보고 대학살을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살인을 하는 일을 평면적으로 국가를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게 된 아이히만은 오히려 유대인 학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윤리적으로 무책임한 일반인은 우리 사회에도 섞여있다. 일본 국립 대학의 재일조선인 교수 서경식의 '보통 존재들의 폭력성'은 개인이 오직 본인의 메리트(merit 유리한 점, 실적, 능력)만을 추구하면 타인에게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의 엘리트 학생들은 본인이 2차 세계대전 때의 독일인이라면 메리트를 위해서 유대인과의 교우관계를 끊겠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재일 조선인 학생은 반론을 펼쳤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 주장은 엘리트 학생들의 무비판적인 사고 방식을 보여준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인 재일 조선인 학생 앞에서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관계를 끊겠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들이 이러한 주장을 한 까닭은 그들이 유대인이 차별당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비판적 사고는 인간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부조리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이 차별당하는 상황에 대해 저항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복종을 전제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올바른 행동은 부정의한 상황에 비판적으로 맞서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저항의식이 필요하다.
평범한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를 갖춰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윤리적 판단은 비판적 사고를 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는 타인에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도와줘서 타인도 본인과 같이 권리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또한 비판적 사고를 가지면 타인을 공감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다. 인간이 윤리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선 불행이 닥친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동정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본인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타인을 위해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판적 사고는 우리가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것을 도와서 윤리적 판단을 하게 한다.
두번째로 윤리적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비인도적 행위에는 윤리적 책임이 당연하게 따르기 때문이다. 이 윤리적 책임은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기 때문에 자기합리화 등을 통해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설득력 있는 상황이 생기면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윤리적, 도덕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명령에 따라 잔혹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학생 역할의 사람은 양쪽에 전극이 부착된 의자에 묶인 채 실험관에 의해 전기 충격 장치가 연결되었고, 교사 역할의 피실험자는 전기 충격 발전기가 있는 다른 방으로 안내된다. 전기 충격 발전기에는 15V 부터 시작해 450V 까지 15V씩 증가하도록 총 30개의 스위치가 달려있었고, 교사가 학생에게 문제를 냈을때 학생이 틀리면 교사가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때, 감독관이 전기충격으로 인한 결과는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하자, 피실험자의 65%(40명 중 25명)이 450V에 해당히는 전기충격에 도달할 때까지 버튼을 눌렀다.
피실험자는 본인이 전기충격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아도 된다는 점과 실험이라는 상황으로 인해서 아무렇지 않게 비윤리적인 일을 행했다. 피실험자는 상황이 윤리적으로 올바른지 판단해야 하고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악의 평범성의 사례를 보고 처음엔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은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포함한 모두가 타인에게 권리가 존재한다는 지식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옳지 않았다. 나는 윤리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많았고, 우리 주변의 사람, 그리고 본인 또한 악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가 간단히 악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비판적 사고를 길러서 윤리적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를 길러서 무조건 타인을 위해 행동하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우리가 본인의 생명을 타인을 위해 바치는 정도는 아니여도 이타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