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을 하는 이유

우리 학교의 쉬는 시간,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자그마한 카드 여러 장을 각자 들고 서로에게 보여주며 즐겁게 떠든다. 여학생들이 뭘 하고 있는 건지, 멀리서 보면 ‘카드 게임인가?’ 싶지만, 사실 카드 게임도, 포켓몬 카드도 아니다. 바로… 각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의 ‘포토카드’를 자랑하거나 거래 중이다.
포토카드란, 연예인의 사진을 명함 규격의 카드에 인쇄하여 프린트한 것인데, 줄여서 ‘포카’라고 부른다. 각 아이돌들의 소속사들은 대부분 이 포토카드들을 음반에 끼워 판매한다. 아이돌 팬들은 앨범을 사거나 중고거래를 통해 포토카드를 열심히 모으는데, 희소성이 높은 유명 아이돌의 포토카드는 중고거래에서 한 장에 10만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덕후들은 아이돌 뿐만 아니라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팬들은 자신의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물건 또는 굿즈들을 모은다. 또, 아이돌의 경우에는 콘서트장이나 팬사인회에 가거나 팝업스토어를 방문하는 등 다양한 행위를 한다. 이렇게 연예인, 애니메이션, 게임 등 좋아하는 분야를 파고드는 행위를 ‘덕질’이라고 한다. 이러한 덕질을 하는 사람들을 ‘덕후’라고 부른다. 덕질의 어원은 일본어 ‘오타쿠’인데, 많은 사람들이 흔히 ‘덕질’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우리말로 표현하면 ‘애호’라고 하기도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덕질은 주로 10~30대인 a세대와 mz세대가 많이 한다. 또, 오픈 마켓 서비스 ‘옥션’에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 조사 대상의 96%가 무언가에 푹 빠져 덕질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소 지나치게 보일 수 있는 덕질에 대한 생각도 77%로 ‘긍적적’이 많았으며, 덕질을 해본 여성과 남성의 덕질 대상은 각각 ‘연예인’과 ‘게임’으로 가장 많았다. 더불어, 덕질을 위한 월평균 지출 비용은 ‘5만원 내외’가 약 30%로 가장 많았고, 덕질을 위해 ‘온라인 광클 대기’를 해본 사람이 무려 36%나 되었다. 또한, 2022년 기준 아이돌 팬덤 산업 규모는 무려 약 8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아이돌 팬덤 산업 중 공식이 아닌 ‘비공식 굿즈’ 산업만 8천억이나 되었다.
우리 학교 역시 덕질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여학생들은 주로 아이돌을 덕질하며 굿즈들을 사고, 남학생들은 게임을 오랜 시간 하며 아이템들을 사는데 돈을 쓴다. 여학생의 경우, 앞서 말했듯이 같은 아이돌 그룹을 덕질하는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함께 덕질을 하기도 한다. 또, 남학생들은 학교에서 거의 항상 게임 이야기만 한다.
사람들은 보통 단순 재미를 위해 하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등의 인간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덕질을 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덕질을 하는 동안 큰 즐거움을 느끼고, 덕질을 목적으로 쓸 돈을 열심히 모으기도 한다. 또, 덕질을 하는 대상이 같은 사람들끼리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덕질이 집착이 되지만 않는다면, 덕질은 정신 건강에 긍적적 영향을 미친다. 강원대 박현주 교수팀이 2020년 애니메이션, 모형인형, 만화, 음악, 연예인 등과 관련된 콘텐츠를 전시한 한 박람회장을 찾은 대학생 2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학생 중 약 30%가 현재 덕질을 하고 있었다. ( 헬스조선 뉴스, <나무라지 마세요… '덕질' 하는 사람 행복감 더 높아> 2021. 11. 02 ) 또, 덕질 그룹과 비덕질 그룹을 분류해 각 그룹의 행복감을 조사한 결과, 덕질 그룹 대학생의 행복감이 비덕질 그룹 대학생보다 눈에 띄게 높았다. 이와 함께, 박현주 교수는 논문에서 덕질 활동은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분야에 선호도를 갖고 집중하고, 심취하며, 이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행동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덕질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더 심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영감을 얻거나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 서울대저널에 따르면, 아이돌 그룹을 덕질하는 경우, 그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많이 듣게 되어 노래를 듣는 시간도 증가한다. (서울대저널, <누군가의 팬으로 산다는 것>, 2022. 06. 30 )이 때, 결과적으로는 음악을 더 많이 듣게 되므로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하는 데에도 좋다.
캐나다 정신건강게임 산업 기업 ‘테이크 디스’의 연구 심리학자 레이첼 코워트 박사는 “우리는 삶에서 준사회적 관계(덕질)를 통해 일반적인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없는 영감이나 격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준사회적 관계란 상대방이 관계를 인식하거나 참여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즉, 한 개인이 미디어 인물 또는 유명인과 친밀감과 애착을 형성하는 일방적이고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덕질을 통해 영감이나 격려를 받고,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만약 이 상태에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덕질의 단계가 더욱 높아진다면,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떠나,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대상, 특히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목숨을 걸게 된다. 예를 들어, 연예인들의 사생팬이 숙소에 무단침입하는 것은 기본이고, 갓세븐 멤버 잭슨은 2016년 공항으로 차를 타고 가다가 한 사생팬의 차가 고의로 길을 막아 접촉 사고가 났다. 이러한 사생팬들의 지나친 집착은 연예인들에게 큰 스트레스와 일상생활에서의 위협을 준다. 그러므로 덕질을 할 때는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먼저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나는 걸그룹 ‘뉴진스’를 덕질하고 있다. 나는 1년쯤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덕질하는 행위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친구들이 어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거나, ‘포켓몬 띠부실’을 쓸모도 없는데 왜 모으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또래 여자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려면 ‘k-pop’에 대해 잘 알아야 했고, 나는 4학년 때부터 케이팝에 대해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다. ‘뉴진스’가 마침 그때 데뷔했는데, 내가 k-팝에 관심을 가진 후 데뷔한 첫번째 아이돌이었다. 나는 뉴진스에 대해 찾아보고, 음악을 듣다가 완벽한 프로 아이돌 답지 않고 엉뚱하면서도 발랄한 뉴진스 특유의 매력과 독특한 음색에 빠져 ‘입덕(덕질을 시작하는 것)’을 하게 되었다.
뉴진스는 기존의 아이돌들과는 달리, 복잡한 ‘세계관’에 얽매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뉴진스다움’을 표현한다. 아이돌 시장에서 ‘세계관’이란, 단순한 설정을 넘어 구체적이고 일관된 논리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뜻한다. 아이돌 기획사들은 팬들을 더 그 아이돌에 푹 빠져들도록 하기 위해 그 아이돌만의 스토리, 즉, ‘세계관’을 만든다. 결국, 그 회사는 경제적인 이익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그룹 ‘에스파’의 세계관은 4명의 멤버들이 각자의 아바타를 만나 가상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스파는 이러한 세계관 때문에 대부분의 곡들이 ‘광야’에 연관되어 있어 ‘광야에서 온 그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관을 잘못 만들었을 경우에는 오히려 매력을 저하시키는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뉴진스는 세계관이 없고, ‘완성형’ 신인 아이돌도 아니다. 그러나, 그 사실에서 나오는 뉴진스만의 순수함과 소녀다움은 더욱 많은 팬들을 끌어당긴다.
나는 용돈을 따로 받지 않아 뉴진스의 굿즈들을 많이 사지는 못하지만, 뉴진스에 대해 많이 찾아보거나, 무언가를 성취해낼 때마다 부모님께서 내가 사고 싶어하는 굿즈들을 사주신다. 용돈이 부족한 나는 덕질을 위해 돈을 마구 사용할 우려는 없다. 오히려 굿즈를 얻기 위해 공부를 할 때도 있어 덕질이 공부의 동기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요즘 내 또래 친구들 중 일부는 용돈의 거의 전부를 덕질에 투자한다. 심지어 어떤 친구들은 학교 책상과 사물함, 필통과 책에까지 모두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이나 스티커를 빽빽하게 붙여놓는다. 그렇게 하면 스트레스가 풀릴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수업 시간에도 자꾸 그 사진을 보게 되어 학교 생활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다. 또, 어떤 친구들은 학교에서 태블릿을 활용해 공부해야 하는 시간에서 잠시라도 여유 시간이 생기면 그 사이에 또 최애 아이돌에 대해 찾아보고는 한다. 그리고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밤을 새서 게임을 하거나 게임에 돈을 쏟아붓는다.
요즘에는 학생들도 덕질을 많이 하는 만큼, 위의 모습들은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지나친 덕질은 꼭 조심해야 한다. 덕질은 즐겁게 하더라도, 스스로를 통제해가며 즐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