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 학교에 가다

책 ‘루소, 학교에 가다’는 2113년, 미래의 학교를 배경으로 교육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바람직한 교육이란 자연 속에서 아이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교육이라 말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과거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 병든 아이들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고, 그 이후로 교육 제도가 바뀌어 아이들이 태어나자 마자 학교로 보내져 부모와 자식이 평생 서로를 알 수 없도록 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혁명 이후 지속되어온 교육의 효과가 미미해서 정부에서는 루소의 교육론이 담긴 소설 <에밀>을 재현해 효과가 있는지 실험해보기로 했고, 효과가 있었지만 도중에 실험 오류로 중단된다.
작가는 현대와 유사한 방식으로 교육하는 학교와 루소의 교육관대로 자연 속에서 학생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실험 속 세상을 대조하면서 루소의 교육관을 따르는 교육이 더 나은 교육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첫째, 루소의 교육관을 따르는 교육은 학생이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직접 경험하며 배우기 때문에 더 즐겁게 학습할 수 있다. 둘째, 개개인에 맞춤화된 교육을 통해 자신의 적성에 맞는 학습이 가능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실험 대상자, 주인공 에밀이 자신이 살던 마을, 친구, 선생님 모든 것이 구현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울먹이는 장면이었다. 자연을 좋아하고,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어린 아이같은 에밀이 절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슬퍼서 감정이입 되었다.
이 작품을 읽고, 최근 읽은 교육에 관한 시.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 이 생각났다. 이 시는 학생을 콩나물에, 교사를 물 주는 사람에, 학교를 콩나물 시루에, 물을 교육에 비유했다. 이 시에서는 학교를 똑같이 생긴 콩나물들을 키우는 시루에, 물을 교육에 비유함으로써 학생들의 개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화된 교육을 하는 학교를 비판했다.
이 책을 읽고 현재 내가 받고 있는 교육이 바람직 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한국 교육은 끝없는 경쟁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둘째, 한국 교육은 공교육 보다는 사교육에 더 의존한다.따라서 부모가 교육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수 있는 학생이 더 편하게 , 빠르게 배울 수 있고, 이는 교육의 양극화를 초래한다. 셋째, 1:1로 개인의 특성과 성향에 맞추어진 교육을 할 수 있는 소설 속 에밀의 세상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개성이 다 다른 학생들이 같은 교육을 받는다. 우리 학교에서도 모든 학생들이 다 같은 수업을 듣는다. 어떤 선생님은 학생들 이름도 잘 모른다.
1학년 때,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평소 관심있던 코딩 수업을 듣고, 그 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획일화된 교육 방식보다는,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와 재능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획일화된 교육은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 유발과 자발적인 학습을 막고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갈 기회를 빼앗는다. 한국 교육은 명문대 입학이 아닌 학생들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 사교육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아도 될만큼 공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하고, 소외 계층의 아이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소설 속 루소식 교육을 받으며 자유롭게 탐구하는 에밀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학습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품 속 모티브로 등장하는 루소의 저서<에밀>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