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는 인종차별과 인권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인종차별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는 불의에 저항하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백인 여자를 강간했다는 누명을 쓴 톰이 무죄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왔지만,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도 흑인 차별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하지만 1930년 대 미국은 흑인은 도와줘서는 안될 짐승이나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회였기에 애티거스의 가족과 친구 몇 빼고는 아무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톰을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그 후, 톰은 탈옥을 하다 총에 맞아 죽었고, 톰에게 누명을 씌웠던 유얼 씨는 애티거스의 아이들, 젬과 스카웃을 살해하려고 했다. 운이 좋게도 둘 다 옆집 아저씨의 도움으로 살았다. 이 이야기는 어린 스카웃 핀치의 관점에서 전개되어서 상황의 심각성을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인종차별은 타인을 불행하게 하는 것임을 뼈 속 깊이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안에서 차별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종차별은 미국의 일만이 아니다. 한국의 이태원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교묘한 인종차별이 일어난다고 한다. ‘조선 일보’의 2024년 3월 17 일자 보도에 따르면, 모시스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클럽 입구에서 저지당했다. 그런데, 한국인 기자와 만나 함께 들어가려고 하자 자신을 180도 다른 태도로 대하는 모습에 매우 분해했다. 모시스 씨의 말에 따르면 흑인도 어디에서 왔느냐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선진국에서 온 흑인들은 그나마 더 백인들을 대하는 것 처럼 대해준다. 하지만 개발 도상국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들 보다 열등한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일민족의식이 강해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 인종을 차별하는 문화가 남아있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차별은 다문화된 사회의 조화를 깨트린다. 또한 차별은 차별 받는 사람들이 심리적 불안감, 스트레스 등을 느끼게 한다. 그 결과 차별 당하는 사람들은 자아 존중감을 잃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들이 정해준 대로 믿어버릴 수 있다. 또한 차별은 한 사람이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따라해, 쉽게 대중화되고, 퍼진다는 문제도 있다.
차별에 저항하려면 인종이나 피부색, 국적, 생김새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다 태어날 때부터 존엄성을 가지고 인권이 있으므로 하나같이 다 소중하다. 나도 한국에서 갑자기 어떤 외국인이 길을 물어보려고 말을 걸 때, 많이 당황하고 조금은 꺼려했던 적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다문화 사회로 변하는 이 세계에 적합하지 않은 태도이다.
그런데, 차별은 꼭 인종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남성들은 현재 한국에서 남성 만은 군대에 가고 여성은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이 불평등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여성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것도 일종의 인종차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남성만 국방의 의무를 지는 것은 여성들을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녀평등을 실현하려면 여성도 남성의 병역에 준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면 병역을 핑계로 여성을 차별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나는 부당한 차별을 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이런 행동을 하기 위해 장애인들과 노약자가 있으면 먼저 배려하고 포용적인 태도로 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주변 환경에서 누군가 괴롭힘을 당하거나 부당하게 차별을 당하고 있으면 먼저 다가가서 도와주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와 같은 역사는 반복되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