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는 꿈을 꾸게 된 것은 화사한 꽃들이 만개한 작년 봄 즈음이었다. 나는 심리학과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사실 5학년이 끝나가도록 심리상담가가 되어야 할지, 적성에 맞지는 않아 보이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의사의 꿈에 도전해볼지 고민하며 나의 진짜 '꿈'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정신과 의사라는 진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 것은 바로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였다.
이 드라마에서 배려심 많고 이타적인 한 정신병동 간호사는 너무 타인만을 우선시하다가 친했던 환자가 자살하자 자책하며 우울증에 걸린다. 처음에는 본인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지만 결국 본인의 병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며 치유해나간다.
이 드라마에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모두 본인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결점으로 여겨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한다. 하지만 정신병동에서 환자들은 의료진들의 도움을 받고 스스로의 병을 점점 받아들이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
나는 정신 질환 환자가 직접 느끼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더 알고 싶어서 관련 자료를 찾던 중, <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현직 전문의인 저자가 스무 살에 2형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이다.
2형 양극성 장애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울증’에 해당힌다. 하지만 1형 양극성 장애보다는 증상이 가벼워 경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는 대신 재발이 잦다. 저자는 보통 경조증 상태가 2개월 정도 지속되고, 우울증 상태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8개월까지 지속되기도 했다. 경조증 상태에서는 에너지와 의욕이 넘쳐나서 몇일 밤을 꼬박 세워도 전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태양’ 같은 존재라고 불린다. 그러나, 우울 삽화가 발생하면 그 후 몇 개월 동안은 자괴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며 술을 심각한 정도로 마시거나 약을 과다 복용하며 자해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 때, 우울 삽화란 우울감이 지속적으로 느껴지고 무기력해지는 일정 기간을 의미한다.
저자의 경우,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라 좋은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남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무 살 즈음부터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들이 생겨났고, 의대생이였기에 스스로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내리고는 ‘요즘 우울증 걸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스물 세 살, 양극성 장애의 원인이 되었던 엄마와의 관계에서 시작된 사소한 애정 결핍이 점점 커져가며 자존감 하락 문제가 심각해지자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아 2형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는다.
하지만 저자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본인이 흔히 말하는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족에게 2형 양극성 장애라는 사실을 숨긴다. 그러나 갈수록 몸을 혹사시키거나 자해를 하는 행위는 더 심각해졌고, 전문의가 되어서도 그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름대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였지만, 매일 그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만취 상태에서 처방약을 섭취해 건강을 위한 노력들은 빛을 발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다행히도 저자는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는 남편을 만났다. 남편 덕분에 저자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동시에 치료를 재개하겠다는 마음도 먹게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꾸준히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증상은 한결 나아졌고, 더 이상 심각한 자해 행위를 하지도 않았다. 스스로의 병을 인정하고 부모님께도 말씀드렸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당당히 이야기했다. 2형 양극성 장애는 일상생활에 무리가 가는 병도 아니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방문은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 저자는 이렇게 스스로 병을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증상이 크게 향상되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도 ‘정신 질환 치료는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병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신 질환의 경우 본인 마음의 병이기 때문에 누군가 직접 치료해줄 수 없고 그저 본인이 그 상처를 피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그래서 정신과 치료는 다른 병의 치료보다 까다롭고 복잡하다. 아무리 의료진이 실력이 있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환자가 끝까지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증상만 일시적으로 억제할 뿐 궁극적인 그 병의 원인을 절대 치료할 수 없다.
다른 과에서는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환자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는 것이 환자와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과는 다르다. 무조건 친절하게만 대했다가는 일부 환자의 망상이나 증상 부정 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환자를 위하고 친절하게 대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감정에 치우친 태도보다는 객관적인 판단과 의견 제시가 더 중요한 경우도 많다.
많은 환자들이 자신이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는 사실을 숨긴다. ‘정신병자’는 사회에서 본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보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병약하지 않고 ‘완벽한’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상처로 인해 힘들어한다. 사람마다 그 정도가 조금씩 다를 뿐, 대부분이 비슷한 증세를 가지고 고통을 느끼기도 하며 살아간다. 정신 질환도 감기, 독감, 폐렴과 같은 평범한 병의 일종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의 증상이 감기와 같이 가볍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정신 질환은 암과 같은 심각한 어떤 병들만큼이나, 아니, 그런 신체적인 병들보다도 더 괴로운 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 질환은 두렵고 꺼려해야할 대상이 아닌 일반적인 질환의 일종이고, 증상의 경중 정도와 관계없이 늘 제대로 된 치료의 시작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방문이다.
대면 소통의 기회가 줄어들고, 그만큼 사람들의 공감 능력도 부족해짐에 따라 사회가 피폐해져가고 있는 요즘,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을 서울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 심지어는 초등학생까지도 우울증이나 ADHD 등으로 정신과 의원을 찾는다.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의 수가 증가하는 만큼, 정신적으로 고통받지만 정신과 의원을 방문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입학 후 몇 개월간, 학교에서는 늘 밝고 명랑한 척 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실 안에 홀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학 학원에 가면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똑똑한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한동안 우울감과 무기력함에 빠져 살다가, 그 다음 한 달 정도는 에너지가 넘쳐났다. 특히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한 달 동안은 거의 하루에 잠을 1-2시간 정도만 자며 수행평가를 완벽하게 해내고, 이끌고 있는 자율동아리 활동을 어떻게 하면 더 알차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학교에서 나에 대한 평판은 무척 좋았고, 나 역시 반짝반짝 빛나는 그 생활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결국은 다시 무기력과 피로에 눌려 생활하게 되었다. 심지어 평생 수업 시간에 졸아 본 적이 없다고 자부했던 내가 학원에서 늘 졸음과 사투를 벌였다. 내 반쪽은 찬란한 햇살을 만끽하며 피어나는 꽃을 연상시키는 예쁜 분홍색 물감에 물들여지고, 반쪽은 끝이 없어 보이는 심해의 짙은 남색 물감 속에 가라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을 읽으며 더욱 저자에게 공감이 되었다. 우울감과 지나친 에너지로 생활하는 기간이 반복된다는 점, 그리고 경조증 상태에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이 에너지가 넘치고, 내가 ‘찬란하게’ 빛나는 기분이 든다는 점에서 나 자신을 보는 듯 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런 고충을 몇 년간 부모님을 포함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내가 이 사실을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정신병자’로 볼까 봐, 나는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다. 또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원래 사람은 살면서 다 힘든 법이야.’라고 말할까 봐 두려웠다. 나는 정말 아픈데 그 아픔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면 더욱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사실은 이런 내 아픔이 내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진짜 이유이기도 했다. 장래희망을 조사할 때마다 쓰던 ‘적성에 잘 맞아서, 공감 능력을 잘 활용하여 환자들을 돌볼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이유는 보여주기용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혹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만은 진심으로 보듬어주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파도 남들의 시선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고, 홀로 더 아파지기만 하는 그 악순환을 끊어주고 싶었다.
다행히 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런 증상들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의 1학기가 끝나갈 무렵, 현재 같이 다니는 가장 친한 친구들 4명을 만났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 서로에게는 다들 꾸밈없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각자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응원도 해주었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힘들 때는 초등학생처럼 계속 신나게 장난만 쳤다. 서로 놀리고, 근심 걱정 없이 마음껏 웃고, 쫓아다니면서 학교 운동장을 뛰어다닐 때면 내가 저 구름 위로 둥둥 떠오른 것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이 친구들을 통해 항상 혼자서 마음속에 꽁꽁 숨겨 두었던 두려움과 강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매일 가야금을 치고, 가사가 예쁜 노래들을 찾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하고 평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소에는 새벽 4시에 잠들고 7시에 일어나던 수면 습관을 규칙적으로 1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바꾸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강박과 완벽주의가 줄어들며 오히려 숙제를 더 효율적으로 끝낼 수 있었기 때문에 수면 시간이 1시간 늘었다. 뿐만 아니라 비교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올바른 수면 습관이 자리잡으면서 날 집어삼킬 것만 같았던 피로가 사라졌다.
이런 변화를 겪으며, 나는 더욱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진심을 다해 마음을 보듬어주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리라 결심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면담하기도 했고, 관련 서적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었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정신과 의사는 풍부한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의 삶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내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꼭 정신과 의사가 되어 사람들이 정신과 의원을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도록, 꺼려하지 않고 언제든지 힘들 때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혼자 속앓이만 하다가 간신히 용기를 내어 방문해야 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