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페스트는 어떤 재난이 위협할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 구성원의 연대와 연합만이 재난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이라는걸 알려준다.
194X 년, 해안도시 오랑에서 죽은 쥐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이 쥐들은 페스트라는 질병을 가지고 왔고, 도시는 봉쇄되어 사람들은 패닉에 빠진다.
파늘루 신부는 사람들에게 신이 내린 징벌이라고 하며 회개하라고 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리외 의사는 환자들을 살리겠다는 소명으로 열심히 치료에 임했다. 그와 타루, 랑베르는 기도만이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느낀 파늘루 신부와 아들을 잃은 오통 판사와 함께 봉사대를 만든다.
책에서 파늘루신부는 페스트를 보고 인간에게 죄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신념은 오직 신을 향한다. 아무런 죄가 없는 아이가 죽는 것을 봤지만 그는 모두 신의 의미로 해석하며 병에 걸렸을 때도 의사의 치료를 거부했다. 랑베르는 오랑에 온 기자인데, 페스트 발병 이후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하지만 그는 리외 의사에 뜻에 따라 자신도 페스트에 관련이 있다고 하며 봉사한다. 타루는 사적인 이유로 오랑에 온 사람이다. 그가 봉사대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생각해냈다. 그는 전염병은 모두 인간의 책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사망한다.
페스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다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유를 가지고 보건대에 참여해 봉사한다. 이유가 무엇이였든 등장인물들은 페스트라는 악에 맞서서 결국 이겨낸다.
나는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잘모르겠다. 13년밖에 살지 않은 내가 그 질문에 답하려면 더 많은 경험을 해야할 것 같다. 나는 신이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기보다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는지와 믿지 않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질 것 같다. 신의 존재를 믿는 인간중에서도 신앙의 깊이에 따라서 삶의 차이가 생길 것 같다. 신의 존재를 믿는 인간은 고통이 왔을 때 고통을 신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래도 고통의 의미를 해석하기 더 힘들어할 것 같다.
페스트에서의 내가 인상깊었던 장면은 파늘루 신부가 이름 모를 병으로 죽은 장면이다. 파늘루 신부의 사상은 '신부가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면, 그건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는 죄가 없는 오통 신부의 아들이 고통 속에서 죽는 모습을 본 다음에 신이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걸 알았다. 하지만
신부로써의 신앙을 잃을 수 없어서 그의 사상에 맞게 병에 걸려서도 의사의 진찰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리외에게 '성직자에게 친구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신에게 맡겼죠.'라고 한다. 이 장면과 신부의 설교 장면을 본 이후 나는 신앙은 사람에게 버틸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긴 사람은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종교인의 인생은 내 입장에서는 너무 슬픈 것 같다. 그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 없이 모두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인생을 사는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신을 위해 산다고 해도 현재로써 신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는 내 기준으로 봤을 때는 너무 슬퍼보인다.
페스트의 내용은 요즘 시대에 나온 바이러스인 코로나 19와도 연관 지어 읽을 수 있다. 페스트 때 오랑 주민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정신을 못차라고 있었다. 코로나 19때 초반에 우리도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소설처럼 우리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우리의 본분을 다하면서 재난 상황을 이겨내고 있다. 모두 한마음으로 코로나19라는 페스트에 반항해 이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통해 성장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통이 있으므로 우린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고통을 통해 우린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