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페인트>는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정부는 부모들이 비용 등의 문제로 양육을 기피하는 아이들을 돌본다. 아이들은 NC센터라고 불리는 공간에서 생활하며 13세부터 19세까지 페인트(영어 parents interview의 줄임말)라고 불리는 부모 면접을 통해 직접 부모를 고를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은 우연에 따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계약을 맺고 함께 생활한다. 현실과는 다른 부모자식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우리에게 흥미를 유발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선택한다면 기존의 부모자식 관계와는 다른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런 설정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말하려고 했을 것 같다.
주인공 제누의 친구인 아키505는 부모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제누에게 “나는 우리가 부모를 선택하는 게, 꼭 결혼 같아. 결혼이라는 게 그런 거 아냐? 남남이던 두 사람이 계약을 맺고 한집에서 사는 거. 서로 맞춰 가느라 처음에는 싸우기도 할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아니면 헤어지면 되고. 부모 자식 관계도 그런 거 아닌가? 형, 나는 사랑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라고 말한다. 이 말처럼 세상 어떤 부모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고,부모와 아이와의 관계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바람직한 관계는 서로가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는 관계이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맞춰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만약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이용한다면 그들의 인생에 큰 갈등이 계속될 것이다. 이 작품처럼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선택한다면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상황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한다면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이런 고정관념은 자식이 부모를 섬기며 살아야 한다고 믿던 유교 사상에서 나왔다. 유교 사상에서 자식은 부모의 결정에 의존하여 부모의 말과 의사에 무조건적으로 따른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아이를 통제한다면 아이는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해 불행해지고, 부모를 원망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또한 부모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자식은 자주적이지 못한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에게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고 방임해서도 안된다.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일을 자주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에서 아이가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엄마에게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에 관해 여쭤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내가 수학을 배우는 속도가 또래에 비해 늦자 조급해하며 많이 화를 내셨다. 하지만 엄마가 며칠 뒤 다시 생각해보니 부모는 자식을 닦달하기 보다는 기다려주며, 자식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뒤로 엄마도 내 속도에 맞춰 주셨고, 나도 엄마와 꾸준히 소통하며 맞춰가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