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과연 좋은 것 일까?
방드르디 야생의 삶은 쓴 작가가 비판하려는 것은 “문명의 검은 부분”같다. 책 속에서, 방드르디 야생의 삶이라는 책은 문학계의 거장인 대니얼 디포가 쓴 로빈슨 크루소를 미셸 투르니에가 비판적 관점으로 다시 쓴 책이다. 로빈슨 크루소에서는 로빈슨이 희대의 히어로인 등장인물로 나타냄으로써, 어떤 힘든 상황들이 와도 다 이겨내는 무인도 서바이벌 생존기이다. 그러나, 방드르디 야생의 삶에서는 로빈슨은 그저 많이 등장하는 조연일 뿐이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하인인 방드르디가 주인공이다. 이 방드르디는 로빈슨 크루소에서는 주인만을 사랑하고 주인을 아끼고 주인을 존중하는 충직하고도, 정직한 하인으로 나온다. 또한, 로빈슨과 그의 관계는 사이좋은 친구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방드르디 야생의 삶에서는 그렇게 묘사되지 않는다. 방드르디는 주인을 존경하지만, 거짓말도 하고, 기본적인 반항심이 있다고 묘사된다. 또한 가장 중요한 점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문명이 발전되었다고 하면, 부러워하고, 따라하려 한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되는 것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문명은 식민지를 만든다. 이 책에서 로빈슨은 아무도 없는 무인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이 그곳의 총독인 양 산다. 이 대목에서, 서양 국가들의 과도한 식민지 욕심, 터무니없는 식민지 욕심을 풍자한다. 또한 로빈슨은 방드르디를 자신의 하인으로 임명하는데, 이것은 ‘노예’를 의미한다. 말이 하인이지 노예인 방드르디는 야생, 자신이 뛰놀던 야생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는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을 잘못하면, 채찍으로 맞는 노예의 삶을 살다가 남의 배를 타고 떠나 버린다. 내가 보기에 이곳은 노예를 둘러싼 전쟁을 은유적으로 의미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나타내는 문명의 단점들은 식민지, 노예, 전쟁 등이 있다.
나는 이태까지는 문명이 항상 좋고, 선진국들이 많이 부러웠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인류 최대의 비극인 세계 1차 대전으로 이끈 요소들 중 하나인 식민지와 연관이 되어있고, 다수의 인권을 처참히 짓밟은 노예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문명’이라는 단어를 더 성숙하게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문명의 검은 부분보다는 좋은 부분이 더 많다고 아직도 생각한다. 문명이라는 것은 현대인의 삶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기도 했으나, 인류의 삶의 질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 책에서도, 로빈슨 크루소가 문명과 떨어지자 엄청나게 힘들게 고생하면서 살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자유의 삶을 추구하던 방드르디 마저도, 차원이 다른 문화의 스케일을 보고서는 마지못해 감탄하고, 부러워했다. 그렇기에 아마도 너무 부럽기 때문에 선원들을 따라간 것일 것이다.
실제에서도, 문명이 발달된 나라가 어두운 면들도 많지만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리더형 나라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현재 사회는 수준이 높은 문화를 자연보다 중요시한다. 그 때문에 그런지, 나도 문화를 비판하는 것은 이해는 가지만 찬성하지는 않는다. 로빈슨 크루소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재미있는 서바이벌 뿐만이 아니라 그때의 서양 관념이 그대로 담겨 있는 책이라는 점을 깨우치게 되었다. 책을 책에 묘사되어 있는 단어 그 그대로 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담겨있는 그 시대의 사상, 작가의 풍자 같은 것 들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아주 훌륭한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