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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알 권리를 명분으로 인간을 이용해도 되는가?

케빈 카터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는 바닥에 엎드려 있는 마른 흑인 소녀와 소녀의 뒤에서 대기하는 독수리 한 마리를 보여준다. 독수리는 아마도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먹이를 기다리는 독수리와 굶어죽어가는 어린 여자아이의 대비를 통해 아프리카 빈곤문제의 심각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이 사진을 보면서 소녀의 가난한 집안 환경 등을 상상하며 소녀에게 연민을 느낀다. 이러한 연민은 곧 아프리카 빈곤 문제에 기부를 하는 식의 실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도덕적 상상력은 중요하다. 도덕적 상상력은 도덕적 상황에서 도덕적 판단과 도덕적 실천을 도와준다. 도덕적 상상력은 역지사지의 태도를 바탕으로 타인의 맥락을 이해하여 공감 능력과 도덕적 민감성을 높이게 해준다. 이 사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들어서 국제적 문제인 아프리카 빈곤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기 때문에 좋은 사진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사진은 저널리즘 윤리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기자가 더 좋은 보도나 사진을 위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이용해도 될까? 만약 작가가 독수리를 먼저 쫓아내고 소녀를 도왔더라면 아프리카 빈곤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할 기회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진을 찍은 이상 도움이 필요한 소녀를 이용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사진을 찍는 행동이 더 바람직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첫째, 사진가가 위험한 상황을 앞에 두고 사진을 오래 찍었을 리도 없고, 실제로 돌발상황이 발생한다면 충분히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사진은 퓰리처상을 수상할 만큼 예술성을 인정받았으며 아프리카 빈곤 문제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도 성공하였다. 만약 소녀를 먼저 구했더라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이용하여 극적인 사진을 찍는 것을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지만 목적이 다수의 보편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론은 공익을 명분으로 도를 넘은 취재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언론 보도는 객관적으로 진실을 추구하며 사회를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언론은 시민들에게 실효성 있는 보도를 제공하여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일련의 마약 의혹 사태는 대중의 알 권리와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최근, 故 이선균 배우에 대한 마약 투약 논란이 뉴스에 보도되며 화제가 되었다. 인천항에서 유입된 마약의 유통 경로를 추적하던 경찰이 한 유흥업소를 발견하였으며, 유흥업소의 종업원과 故 이선균 배우가 연락을 주고받았던 정황이 확인되어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가 마약을 투약하였다는 정황증거는 많았으나 몇 차례나 진행된 검사에서는 모두 음성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그가 유흥업소의 여실장과 주고받은 문자와 전화 녹취록 등이 모두 공개되며 그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각종 커뮤니티를 타고 인터넷에 번졌고, 각종 루머와 카더라가 붙으며 더 자극적인 내용으로 와전되었다. 사건의 첫 시작과 달리 실제 마약 투약 여부는 상관 없이, 유명인에 대한 마녀사냥이자 인격살인으로 진행된 것이다. 결국 사건이 처음 보도된 지 약 2달만에 그는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자살했다.
당시 여론은 그를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가정을 버리고 불륜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마약까지 했다며 강도높은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설령 그의 혐의가 전부 맞았더라도, 언론은 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공론화할 권리가 있었을까? 그리고 사회는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를 단죄할 권리가 있었을까?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대중의 알 권리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사항이다. 법률상, 공인의 사생활 보호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라면 제한될 수 있다. 여기서 ‘공인’ 이란 대중의 생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원칙적으로는 국회의원 등을 뜻하나 최근에는 뜻이 확대되어 연예인에게도 적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실제로 ’ㄷ’ 언론사와 연예인 사이에 여러 차례 소송이 있었으나, 많은 기사들이 공공의 관심사를 위한 목적이라고 판단되어 언론사는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예인이라고 해서 사생활이 완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기준이 다소 모호하기는 하나, ‘극히 내밀한 사적 영역’ 이나 ‘개인적인 비밀’ 등은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로 판단되지 않아 언론으로부터 보호받는다.
이번 사안에서 언론의 보도는 사생활 침해로 판단될 만큼 과한 면이 있었다. 우선 마약 의혹에 대한 보도는 공공의 관심사를 위한 보도라고 할 만하다. 그의 마약 투약은 단순 소문이 아니라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혐의’ 였으며, 대중은 공인의 범죄 사실에 대해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소 실장과의 대화 내용은 정당한 보도라기 보다는 사생활 침해에 더 가까워 보인다. 당사자가 내용 공개에 대해 동의했을 가능성은 낮고, 대화 내용만으로는 그의 불륜 사실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간통죄의 폐지로 인해 불륜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이지만 더이상 범죄가 아니다. 그렇기에 불륜 사실은 대중의 관심사는 맞지만 범죄가 아니라 ‘극히 내밀한 사적 영역’ 에 가까우며, 보호를 받았어야 하는 사생활이다.
바람직한 보도의 영역은 마약 수사에 관한 보도까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바람직한 보도의 선을 넘어 사생활 침해를 저질렀다. 추정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대중의 알 권리를 표방하여 언론사의 이익을 추구했거나 둘째, 연예인의 프라이버시보다 대중의 알 권리를 우선시한 것이다.
이번 사안으로 인해 공인의 사생활 보호와 대중의 알 권리의 충돌이라는 논쟁에 또다시 관심이 쏠렸다. 현재도 이 논쟁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과도한 언론에 대한 대중의 비판은 확실히 필요하다. 언론이 공인을 감시하는 것 처럼 대중 또한 언론을 감시해야 한다. 대중은 언론의 주장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검토해야 하며, 언론이 바람직한 보도를 하도록 비판과 의견 표출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또한, 대중도 이런 자극적이고 경쟁적인 보도를 소비하지 않아야 한다.